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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封 고려시대 정치사의 제문제 高麗時代政治史的諸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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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정치사의 제문제 高麗時代政治史的諸問題

出版日期
2020/12/21
閱讀格式
PDF
書籍分類
學科分類
ISBN
9788949949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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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당의 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고려의 정치제도가 확립되는 것은 성종대 이후이다. 건국초기에는 태봉의 제도를 계승한 광평성(廣評省) 내봉성(內奉省) 순군부(徇軍部) 병부(兵部) 등이 중요한 정치기구로서 국정을 분담하였으나 이후 3성6부제가 수용되면서 기구간 기능의 분리나 통합을 통해 3성6부체제로 개편되었다.
3성6부를 중심으로 하는 고려의 정치제도는 당(唐)의 6전 체제(六典體制)를 모범으로 한 것으로, 건국 후 60여 년이 지난 성종 대에 정비되었다. 동시에 성종은 삼사(三司)와 추밀원(樞密院) 등 송의 제도도 일부 수용하여 고려의 정치제도는 당제(唐制)와 송제, 그리고 고려의 독자적인 제도가 혼합되었다.
3성6부제는 중서성에서 입안한 정책이나 법제 등을 문하성의 재상들이 심의 의결하는 귀족 중심의 정치제도이고, 중서문하(中書門下) 삼사(三司) 추밀원(樞密院)을 중심으로 하는 송의 정치제도는 황제의 명이 곧바로 실행되는 군주 중심의 정치제도이다. 이처럼 고려가 귀족 중심의 정치체제인 3성6부제를 기본으로 하면서 한편으로 군주 중심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송의 제도를 수용한 것은 왕권강화와 중앙집권화 정책을 추진하던 성종대의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고려시대 정치제도사 연구를 시작하면서 가졌던 의문의 하나는 이미 언급했듯이 고려는 기본적으로 당의 3성6부제를 받아들여 완결된 정치체제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송의 제도를 수용하여 같은 기능이나 성격을 가진 2개의 기구를 설치하였는가라는 점이었다. 특히 경제와 재정, 군사부문에서 3성6부 체제 하의 호부(戶部)와 병부(兵部)가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송의 삼사와 추밀원제도를 받아들여 호부와 삼사, 병부와 중추원을 병치(倂置)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고려가 당이나 송으로부터 수용한 많은 정치제도가 고려사회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었나 하는 점이었다. 예컨대 문산계(文散階)와 무산계(武散階)의 관계제(官階制), 행수제(行守制), 판사 지사제(判事知事制) 등은 고려사회에서 중국 본래의 제도와 전혀 다르게 변용되었다.
본서에 수록된 글들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작성된 것으로 다루고자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1절에서는 고려에서는 당의 3성6부제를 수용하여 경제 재정기구로서 호부가 존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송의 삼사를 추가로 설치하여 두 기구를 병존시켰는데. 그 정치적 배경을 밝히고 아울러 고려와 당 송 제도의 비교를 통해 고려에 설치된 호부와 삼사가 각각 어떤 기능을 수행하였나를 정리하고자 하였다.
특히 송의 삼사는 당 후반기 사회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종래 호부의 업무에 새로 늘어난 업무까지 포괄하여 수행하는 기구로 출현하여 호부를 대체한 기구였다. 그러므로 고려에 설치된 삼사의 기능이나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송 삼사와의 단순한 기능 비교만이 아니라 삼사가 출현하기 이전에 경제 재정관계 업무를 담당하였던 국초의 여러 기구들과의 관계 파악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호부 삼사와 당의 상서호부와의 기능 비교도 필수적이다. 즉 기능이나 성격에 많은 차이가 있는 송 삼사와 고려 삼사의 단순 비교보다는 오히려 3성6부 체제가 기본이었던 고려에서 당 호부의 기능이 호부와 삼사에 분담된 것으로 보이므로, 두 기구 사이의 업무 분장의 내용과 업무 분장에 따른 양자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의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2절과 3절에서는 당의 3성6부제를 수용한 고려에서 군사업무를 담당한 기구로 병부가 존재하였는데도, 다시 송의 추밀원제도를 본 따 중추원을 추가로 설치하여 2개의 군사기구를 병치한 배경을 밝히고자 하였다. 고려시대의 군사제도에서 군령(軍令)체계와 군령기구의 내용이 어떠하였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조선 초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지식인들은 고려의 중추원(中樞院)이 군령체계상 발병(發兵)업무를 담당한 군령기구로 이해하였다. 고려에서 중추원이 처음 설치되는 시기는 성종 대이므로 그 이전에도 군령관련 업무를 담당한 기구가 존재하였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건국초기에 군사관계 기구로서 병부(兵部)와 함께 등장하는 순군부(徇軍部)의 존재가 주목된다. 병부가 군사행정 업무를 관장하는 군정기관이었으므로 순군부는 군정과 대비되는 군령업무를 담당한 기관이었을 것이다. 이 절에서는 당시의 정치적 군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두 기구의 설치 배경, 기능과 성격, 그리고 변화 과정을 검토하였다.
제2장 1절에서는 고려의 상서 6부에 설치된 판사 지사직의 기능과 성격을 살피고자 하였다. 그동안의 연구에서는 상서 6부의 판사 지사직은 고려사(高麗史) 백관지(百官志) 기록을 근거로 상서(尙書) 위에 판사(判事)가, 상서와 시랑(侍郞) 사이에 지사(知事)가 추가로 설치되어 판사 상서 지사의 3직이 모두 임명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중국의 경우 판사직과 지사직은 추가로 설치된 직이 아니라 타 관서로부터 파견된 차견관(差遣官)이 맡은 관직으로, 차견 관직보다 본직의 관계(官階)가 높은 것은 판(判)이라 칭하고 낮은 것은 지(知)라 칭하였다.
송에서는 3성6부가 허설화한 상태에서 차견관으로서 6부의 상서직을 겸한 자가 판사 혹은 지사가 되어 그 부서의 모든 업무를 주관하였다. 그러나 3성6부가 제 기능을 수행했던 고려의 경우 성서 6부의 판사지사제는 송의 제도와 큰 차이가 있었다. 차견된 타관이 6부 상서 대신에 판사나 지사직에 임명된 것이 아니라 상서직과 별도로 판사 혹은 지사직이 추가로 설치되어 겸직으로 제수되었다. 또한 상서 6부의 판사 상서 지사의 임명 사례를 보면 3직이 모두 임명된 경우는 전혀 없고, 언제나 상서를 중심으로 판사나 지사 중 한 직만 임명되거나 상서만 2인이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6부의 장관인 상서를 중심으로 그 위와 아래에 판사 또는 지사가 임명되어 판사 지사가 하나로 묶여 운영된 제도인데 지금까지의 연구는 주로 판사직에만 관심을 가져 그 설치 배경과 겸직관계, 겸직을 둘러싼 재신과 국왕간의 권력관계 등의 해명에만 치중하였다. 반면 지사직은 판사직과 함께 하나의 제도로 운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판사직과 무관한 별개의 존재로 파악함으로써 이에 대한 연구는 매우 소홀한 편이었다. 이 절에서는 고려전기 관제의 변화가 일어나는 충렬왕대 이전 시기를 대상으로 상서 6부의 판사 지사제의 실시 배경과 운영의 실제, 그리고 판사 상서 지사직의 기능 검토를 통해서 본 제도의 정치적 성격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2절에서는 고려시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행직(行職)과 수직(守職)의 존재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수용된 행수제(行守制)가 고려 사회에서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가를 살피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초에 처음으로 9품관제가 실시되었고, 동시에 품계의 고하에 따라 관인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관계제(官階制)도 실시되었다. 관리들에게 주어진 관계는 관직의 품계와 일치시키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관직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관리들의 능력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관직을 제수할 때 관계(官階)와 관품(官品)을 일치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러한 관계와 관품의 불일치를 보완하기 위해 시행된 제도가 행수제(行守制)로서, 관품이 관계보다 낮은 경우는 관직 앞에 행(行), 관품이 관계보다 높은 경우는 수(守)라 칭하였다. ...

(以下為AI翻譯,僅供參考)

引言
高麗的政治制度以黨的制度為基礎,其確立是在成宗時期之後。建國初期,繼承泰封制度的廣評省、內奉省、徇軍部、兵部等作為重要的政治機構分擔國政,但此後隨著三省六部制的採納,透過機構間職能的分離或整合,改組為三省六部體制。
以三省六部為中心的高麗政治制度,是以唐朝的六典體制為藍本,在建國約六十年後的成宗時期得以整備。同時,成宗也部分採納了宋朝的三司和樞密院等制度,因此高麗的政治制度是唐制、宋制,以及高麗獨創制度的混合體。
三省六部制是一種以貴族為中心的政治制度,由中書省草擬的政策或法制等,經門下省的宰相審議議決;而以中書門下、三司、樞密院為中心的宋朝政治制度,則是一種以君主為中心的政治制度,皇帝的命令直接執行。高麗在以貴族為中心的政治體制——三省六部制為基礎的同時,又採納了支持君主中心政治的宋朝制度,這與成宗時期推動王權強化和中央集權化政策的政治狀況有很大關係,其啟示意義深遠。
開始研究高麗時代政治制度史時,我曾有的疑問之一是,如前所述,高麗在基本上採納唐朝的三省六部制並建立起完整的政治體制後,為何還要額外採納宋朝的制度,設置兩個具有相同職能或性質的機構?特別是在經濟、財政和軍事部門,在三省六部體制下已經存在戶部和兵部的情況下,又再次採納宋朝的三司和樞密院制度,將戶部與三司、兵部與中樞院並置。另一個疑問是,高麗從唐朝或宋朝採納的許多政治制度,在高麗社會中實際是如何運作的?例如,文散階和武散階的官階制、行守制、判事知事制等,在高麗社會中被徹底改變,與中國原有的制度截然不同。
本書收錄的文章便是基於這些問題意識撰寫的,其探討內容如下。第一章第一節旨在闡明在高麗,儘管採納了唐朝的三省六部制,並存在作為經濟財政機構的戶部,卻又額外設置了執行相同職能的宋朝三司,使兩個機構並存的政治背景;同時,透過高麗與唐宋制度的比較,整理了高麗設置的戶部和三司各自承擔的職能。
特別是宋朝的三司,是隨著唐朝後期社會經濟狀況的變化而出現的,它是一個涵蓋了原有戶部職務以及新增職務的機構,並取代了戶部。因此,要正確理解高麗設置的三司的職能和性質,不僅需要與宋朝三司進行單純的職能比較,還需要了解在三司出現之前,負責經濟財政相關事務的建國初期各機構之間的關係。
不僅如此,高麗的戶部三司與唐朝尚書戶部的職能比較也必不可少。也就是說,與其單純比較職能和性質存在很大差異的宋朝三司和高麗三司,不如說在以三省六部體制為基礎的高麗,唐朝戶部的職能似乎被戶部和三司所分擔,因此應探討兩個機構之間職務分工的內容以及因職務分工而產生的兩者關係等問題。
第二節和第三節旨在闡明在高麗,儘管採納了唐朝的三省六部制,並存在負責軍事事務的兵部,卻又仿效宋朝的樞密院制度,額外設置了中樞院,使兩個軍事機構並置的背景。高麗時代軍事制度中,軍令體系和軍令機構的內容仍不明確。根據朝鮮初期的記載,當時的知識分子認為高麗的中樞院在軍令體系上是負責發兵事務的軍令機構。高麗中樞院最初設置於成宗時期,因此在此之前也應該存在負責軍令相關事務的機構。與此相關,建國初期與兵部一同出現的軍事機構——徇軍部的存在引人注目。由於兵部是掌管軍事行政事務的軍政機關,因此徇軍部應該是負責與軍政相對應的軍令事務的機關。本節探討了當時的政治軍事狀況,以及兩個機構的設置背景、職能和性質,以及變化過程。
第二章第一節旨在探討高麗尚書六部設置的判事、知事職務的職能和性質。以往的研究根據《高麗史》百官志的記載,認為尚書六部的判事、知事職務是在尚書之上增設判事,尚書與侍郎之間增設知事,判事、尚書、知事三職均有任命。
在中國,判事和知事並非額外設置的職務,而是由其他官署派遣的差遣官所擔任的官職,本職官階高於差遣官職者稱為「判」,低於差遣官職者稱為「知」。
宋代,在三省六部虛設的情況下,兼任六部尚書職務的差遣官擔任判事或知事,並主管該部門的所有事務。然而,在高麗,三省六部正常運作,尚書六部的判事知事制與宋代制度有很大差異。並非由差遣而來的其他官員取代六部尚書被任命為判事或知事,而是額外設置判事或知事職務,與尚書職務分開,並以兼職形式授職。此外,從尚書六部的判事、尚書、知事任命案例來看,從未有三職均任命的情況,總是圍繞尚書,僅任命判事或知事其中一職,或者有時僅任命兩位尚書。
如此一來,這個制度是以六部尚書為中心,在其上下任命判事或知事,判事和知事作為一個整體運作。然而,迄今為止的研究主要只關注判事職務,側重於闡明其設置背景、兼職關係以及圍繞兼職的宰相與國王之間的權力關係等。另一方面,知事職務雖然與判事職務作為一個制度共同運作,卻被視為與判事職務無關的獨立存在,因此對其研究非常不足。本節旨在以高麗前期官制發生變革的忠烈王以前時期為對象,透過對尚書六部判事知事制度的實施背景和實際運作,以及判事、尚書、知事職務的職能進行探討,以闡明該制度的政治性質。
第二節旨在透過高麗時代記錄中出現的行職和守職,探討從中國引進的行守制在高麗社會中實際是如何運作的。我國在高麗初期首次實施了九品官制,同時也實施了根據品階高低表示官員地位的官階制。原則上,授予官員的官階應與官職的品階一致,但由於官職數量有限且官員能力存在差異,因此在授予官職時,很難使官階與官品一致。為彌補這種官階與官品不一致而實施的制度便是行守制,官品低於官階者在官職前稱為「行」,官品高於官階者則稱為「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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